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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_ 편의점으로 둔갑한 어른들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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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06-1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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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저자 : 김호연 출판사 : 나무옆의자 분야 : 문학 / 소설

편의점은 일상 가장 가까이에 존재한다. 마트보다 비싼데 누가 편의점을 가느냐고 불평하던 엄마의 목소리를 아직 기억하는데, 이제 편의점은 일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여기 불편한 편의점이 있다. 행사상품도 적고, 상품 구색도 다른 곳 보다 안 좋다. 게다가 인근에 편의점은 두세개가 더 생겨버렸다. 하지만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마치 동화같은 이야기다. 그래, 이건 어른들의 동화다.

70대 할머니인 염 여사는 역에서 파우치를 잃어버리고, 그 파우치를 찾아준 노숙인 독고를 만나게 된다. 도시락을 먹고 가라고 하지만 한사코 폐기 도시락만 먹던 독고는 편의점 야간 알바로 취직하게 된다. 편의점에는 70대 할머니인 사장과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시현과 생계를 편의점 알바로 꾸려가는 오 여사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평생 사장이나 자영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염 여사가 편의점 경영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이 사업장이 자기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삶이 걸린 문제 라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p.

편의점은 가장 생계형 자영업이다. 물론 투자형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 편의점을 한다. 작은 편의점이지만 그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절실한 마음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시현은 공무원 준비를 하는 공시생으로 등장한다. 스펙도 학벌도 별볼일 없는 시현이 공무원 준비를 하는 건 그렇다치고, 학벌도 좋고 스펙도 좋은 사람들이 공무원 준비를 하는 것이 불만인 평범한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방 안 구석의 모니터 속에 있었다. 넷플릭스와 인터넷 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접하고 인생을 즐길 수 있었고, 자신만의 온실인 편의점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때론 공무원이 되는 것보다 편의점 알바생의 삶이 계속 되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했다. 힘들게 공무원이 되어봤자 결국 좀더 큰 편의점이 아닐까? 국민의 편의를 봐주는 공간에서 또다른 제이에스들을 만나는 삶...... p.

넷플릭스와 인터넷 만으로도 충분한 삶이라 하지만 결국은 세상으로 나갈 수 밖에 없고, 그럼에도 현재에 머물고 싶은 그런 마음.

마침 야간에 일하던 가장은 재취업을 하게 되고 그 자리에 독고가 일을 하게 됐다.

독고는 각종 제이에스(진상)들을 퇴치하며, 진상이 분명하지만 알고보면 진상이 아닌 손님들과 조금씩 변해간다. 사실 독고의 설정은 상당히 동화적인데, 독고는 노숙인 시절 알콜 중독으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평소에 하는 행동을 보면 어딘가 범상치 않은, 수수께끼를 가진 인물이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독고가 점점 과거를 기억하게 되는데, 오히려 기억이 나지 않은 채로 소설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강해졌다. 분명 정체가 밝혀지면 억지스러운 설정일텐데, 이를 어쩌나. 오히려 손님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훨씬 더 현실적이어서 집중하기에 좋았는데 독고의 이야기로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클리셰가 등장하고 마니까. 결국은 독고는 과거를 기억하게 되지만 혹시 이 책을 읽기 전에 포스팅을 볼 수 있으니 결말은 아끼도록 하겠다.

원 플러스 원, 투 플러스 원, 제이에스... 그 익숙한 편의점 용어만큼 등장하는 인물들도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공무원 준비를 하며 알바하는 시현이나 작가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나 가족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어서 슬픈 가장이나 주식투자로 실패하고 돈타령하는 아들이나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마지막에 독고의 정체가 밝혀질 때 상당히 익숙하고 부자연스러운 설정들이 많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청부살인이라든가 좋은사람들 흥신소 그냥 한 편의 동화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바쁜 현대사회에서 이런 편의점이 있다면 당연히 망하겠지만 그래도 따뜻한 마음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눈물짓는 그런 동화.

작가의 전작인 <망원동 브라더스>의 두번째 이야기쯤 된다고 하던데 처음 읽는 작가라서 연결고리는 잘 모르겠다.

이 책에는 독고씨를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생각해보니 연극으로 만들기에 참 좋은 책이다. 설정도 그렇고, 인물도 아주 많이 필요하진 않고. 딱 소극장 연극 스타일? '눈물나게 따뜻한 편의점' '올해 가장 감동적인 대학로 연극' '홈리스 독고씨의 정체는 과연?' 뭐 이런 문구와 함께 노숙자로 변장한 배우와 머리를 하얗게 염색한 염여사로 분장한 배우가 등장하는 그런 연극. 독고씨가 대구로 향하는 장면에서 터져나오는 관객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까지, 벌써 연극 한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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